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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과 자기관리

일은 없고, 마음만 바쁠 때

아무 일도 없던 날.
특별히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던 날.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밤은 더 지쳐 있었다.

몸은 쉬었는데, 마음은 하루 종일 일한 것 같았다.

 

1.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루를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일정도 없고, 급한 연락도 없고,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시간을 써보려 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책을 펴도 집중이 안 되고,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어디선가 “지금 이래도 돼?” 하는 목소리가 속에서 울린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시간이 쓸모 없어진다는 생각.
아무것도 안 한 하루는 실패한 하루라는 감정.

 

나는 그 조용함 속에서도 스스로에게서 도망치듯 자꾸 무언가를 하려 한다.

 

일은 없고, 마음만 바쁠 때

2.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신기하게도, 바쁠 때보다 한가할 때 더 복잡하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땐 일단 움직이면 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엔 마음이 수없이 많은 생각을 만들어낸다.

  • “괜히 이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것 같고”
  • “남들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춘 것 같고”
  • “앞으로 뭘 해야 하지?”
  • “이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 생각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머릿속은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3. ‘마음이 바쁜 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오늘 뭐 했어?”라고 물으면 나는 잠깐 말을 멈춘다. 뭔가 분주하긴 했는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만 하다 놓친 일
  • 한참을 들여다보다 아무것도 적지 못한 메모장
  • 영상 하나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자격지심
  • 핸드폰 알림을 보며 계속 예민해진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하루 종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누가 봐주는 일도 아니고, 내가 이룬 성과로 남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공허하다.

 

4. 피로는 ‘행동’이 아니라 ‘생각’에서 온다

우리는 피곤함을 몸의 상태로만 여긴다. 하지만 요즘의 피로는 대부분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생각의 과잉에서 온다.

  • 끝이 없는 비교
  • 멈추지 않는 자기 검열
  • 기대 없이 확인하는 메신저
  • 나를 둘러싼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압박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밤이 되면 이틀 치를 살아낸 것 같은 피로가 남는다.

 

 

5. “괜찮은 하루”라는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때

가끔은 이런 날도 있다.

  • 별일 없었고
  • 결과도 없었고
  • 뭘 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 이상하게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할 수 있었던 날

그런 날은 나를 꾸미지 않았고,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고, ‘멈춰 있는 나’조차 그대로 받아들인 날이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히려 가장 나에게 가까워지는 날이었던 것 같다.

“괜찮은 하루였는지?”

이제는 누가 판단하느냐보다
그 하루를 그대로 기억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