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가하죠? 좋겠어요~” 가볍게 웃으며 건네는 이 말 한마디가 어쩐지 마음을 콕 찌른다. 그냥 인사겠지, 별뜻 없겠지 하면서도 “그렇죠~” 하고 넘기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다. 정말 난 한가한 걸까? 아니면…
1. 시간 많다는 말은 칭찬일까, 핀잔일까?
프리랜서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넌 시간 많아서 좋겠다.” 말은 가볍지만, 그 속엔 무게가 있다. 한 번은 이런 경험도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솔직히 “딱히 바쁜 건 아니야”라고 답했다. 그 순간 흐르는 미묘한 공기. 바로 이어진 말은 이거였다.
“그래도 너는 시간 많아서 좋겠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그 말은 그저 인사였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비교와 평가였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시간이 많다'는 말에 자꾸 예민해졌다.
2. 한가해 보이는 나, 괜히 미안해질 때
프리랜서는 늘 주변 사람보다 느슨해 보인다. 일정이 고정되지 않고, 사무실도 없고, 퇴근 시간도 자유롭다. 그래서 누군가 일에 치여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너무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을까” 하는 이상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한 번은 가족 단톡방에서 “다들 출근했지? 난 혼자 커피 마시는 중~”이라고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정적이 길어지자 괜히 민망해졌다. ‘내가 너무 놀고 있는 티를 냈나?’ 사람들이 날 ‘시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가한 척을 덜 하게 된다.
3. 나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 많다’ = ‘여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시간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건 불안과 고민, 자책과 계획이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일정이 없다고 해서 마음도 평온한 건 아니다.
- 공모사업 공고가 떴을까 싶어 사이트를 계속 들락거리는 아침,
- 신청서를 겨우 다 써서 보냈지만 아무 연락 없는 며칠 동안의 오후.
- 카톡 알림 하나에도 마음이 쿵 내려앉고,
- 심사 결과 발표일이 다가오면 괜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게 된다.
- 내가 괜히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저녁
그 속엔 말 없는 긴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의 하루는 쉼 없이 작동 중이다.
4. ‘넌 시간 많아서 좋겠다’는 말의 숨겨진 함정
이 말이 불편한 이유는 시간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가벼워 보이게 만드는 시선’ 때문이다.
- “시간 많잖아~ 부탁 하나만 해도 돼?”
- “그럼 이것 좀 해줄래?”
- “너는 일 없을 때 뭐 하고 살아?”
이런 말들에는 나의 시간, 노력, 존재가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 숨어 있다. 무심한 말에 자꾸 움츠러든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가 뭔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바쁘지 않은 내가 미안하고,
한가해 보이는 내가 죄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5. 나도 내 시간을 이해하고 싶다
이제는 생각한다. 내가 느꼈던 미안함은 내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그 시간을 ‘남과 비교한 감정’ 때문이었다. 남들이 바쁠 때 나만 여유로운 것 같고, 모두가 어디론가 향하는데 나만 멈춰 선 기분. 그게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멈춰 선 것도 방향의 한 종류고, 천천히 가는 것도 나의 속도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한가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전엔 움찔했지만 요즘은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응, 시간 있어.
그래서 오늘도 나를 돌아볼 수 있어.”
“할 일이 없으면, 생각이라도 하자.”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도, 살아남는 전략이다.”
6. 미안하지 않은 한가함이란
프리랜서에게 ‘한가함’은 게으름도, 여유도 아니다. 그건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숨 고르기다. 그리고 그 숨 고르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정해진 출근 시간도 없는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막연한 불안을 견디며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고 말하는 것. 그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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