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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과 자기관리

“요즘 뭐 해?”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이유

“요즘 뭐 해?”
누구나 가볍게 묻지만,
프리랜서인 나는 이 말이 가장 어렵다.

하고 있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어떤 날엔,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진다.

 

1. 인사처럼 던져진 말에 마음이 멈출 때

“요즘 뭐 해?” “요즘은 잘 지내?” “바쁘지?” 다들 그냥 안부로 묻는 말일 텐데, 이 질문은 이상하게 나의 현재를 증명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프리랜서는 늘 정해진 직함도, 확정된 스케줄도 없이 살아간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게 결과물로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대답을 머뭇거린다.

“음… 그냥 이것저것 준비 중이에요.”
“좀 쉬고 있어요.”
“계획 세우는 중이에요.”

 

이 말들을 내뱉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무겁다. 진짜 하고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걸 설명할 언어가 부족한 것 같다.

 

“요즘 뭐 해?”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이유

2. 하고 있는 건 많은데,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사실 나는 매일 무언가를 한다.

  • 공모사업 일정 체크
  • 제출 서류 준비
  • 다음 콘텐츠 기획
  • 블로그 글 구상
  • 자료 조사
  • 세금 정리… 등등

하루에 처리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 않는다.

결과가 없으면, 과정은 말하지 않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엔
결과 중심의 대답이 기대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꾸 내 시간을 작게 만들고, 내 노력을 뿌옇게 흐리는 말들에 스스로도 익숙해져 버린다.

 

3. 설명하기 힘든 내 마음의 리듬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지인에게 연락이 와서 “요즘 뭐 해?”라고 묻기에 “다음 달 공모 준비하면서 좀 조용히 지내고 있어”라고 말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 그냥 한가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그 말은 악의가 없었지만, 그날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공모 준비하면서 조용히 지낸다’는 건, 절대 한가한 상태가 아닌데. 기획서를 쓰고, 논리를 다듬고, 매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심사 일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간. 내게는 그게 ‘몸은 멈춰 있지만 마음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상태’인데, 그저 한가하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상대의 언어가 아니라 나의 마음 리듬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4. 누군가는 결과를 묻고, 누군가는 나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내 마음을 읽는 사람이 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뭐 해? … 아니야, 그냥 괜찮으면 됐어.”
“결과 없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까.”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무언가 보여줘야만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부담. 그걸 내려놓게 해주는 말이었다.

결과를 묻는 사람보다,
과정 속에 있는 나를 봐주는 사람 한 명이면
마음이 조금은 살아난다.

 

5.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답을 고른다

 

"요즘 뭐 해?"라는 말은 앞으로도 계속 들을 거다. 그리고 어떤 날은 여전히 그 말 앞에서 망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결과 중심의 대답 말고, 감정 중심의 대답을 연습 중이다.

“요즘은 조금 느리게 지내요.”
“마음이 좀 복잡해서 정리 중이에요.”
“일은 없지만, 멈춰 있는 중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예전보다 조금 더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나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지금을 조금씩 더 믿어보기로 했다.